[시승기] 프랑스의 색다른 플래그십, 뉴 푸조 508

이다정 기자 2019-03-25 17:31:11
프랑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패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절감을 무시한 조합의 옷차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반팔을 입고 부츠를 신은 사람, 반팔에 스카프를 두른 사람까지. 분명 날씨가 더워서 반팔을 입었을텐데 스카프와 부츠는 웬 말이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멋스러워 한 번 더 쳐다봤다. 프랑스 자동차 브랜드 푸조의 신형 508을 시승하고, 이 때가 떠올랐다. 508은 실용성보단 멋과 재미에 치중한 차다.

자동차 브랜드의 플래그십(제품의 최상・최고급 기종)하면 으레 고급스러움, 웅장함, 편안함, 넓은 공간감을 떠올린다. 푸조 508은 플래그십이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사실 프랑스 자동차 브랜드의 플래그십을 떠올려보면 몸집이 크거나 안락한 차가 없다.(큰 차가 잘 팔리지 않는 시장 특성도 한 몫 한다) 같은 나라의 브랜드 르노도 마찬가지다. 르노의 가장 큰 세단은 국내에서 SM6로 불리는 ‘탈리스만’이다. 어딘가 조금 심심하다.

이에 반해 신형 508은 개성을 듬뿍 담았다. 개성의 팔 할은 ‘디자인’이다. 신형 508은 8년 만에 파격적인 변화를 거쳤다. 기존의 정통 세단 이미지를 벗고 쿠페 스타일의 5도어 패스트백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구형 모델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바뀌었는지 단 번에 알 수 있다. 구형 508은 외관이나 실내 모두 조금은 투박하다. 일반적으로 ‘세단’하면 떠올리는 그런 차다. 이번 신형 508은 완전히 다르다. 멋을 한껏 부렸다. 

구형 모델과 비교해 35mm 이상 전고를 낮췄고, 전폭은 30mm 늘려 다이내믹한 비율을 완성했다. 낮고 넓어져 바닥에 착 붙는다. A필러부터 루프라인, C필러를 거쳐 트렁크 라인까지 이어지는 쿠페 스타일은 빠르게, 잘 달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여기에 프레임리스 도어로 깔끔하면서도 스포티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이와 함께 푸조 SUV ‘3008’이나 ‘5008’을 통해 미리 선보였던 푸조의 최신 얼굴을 508에도 고스란히 담았다. 사자의 송곳니를 형상화한 LED 주간주행등과 후면의 블랙 패널에 사자의 발톱을 형상화한 3D 풀 LED 리어램프 등으로 존재감을 살렸다. 508 숫자 엠블럼은 보닛 중앙에도 넣었다. 이는 푸조 플래그십 세단의 첫 모델인 504에 사용됐던 방식이다.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면서도, 헤리티지는 계승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시승차는 1.5 알뤼르. 실내도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었다. 상하단이 분리돼 있는 대시보드와 피아노 건반 형식의 토글 스위치, 팔각형의 작은 스티어링 휠 등으로 개성을 살렸다. 여기에 대시보드 하단과 도어 트림을 카본 패턴으로 장식해 스포츠카의 감성을 더했다. 상위 트림인 GT 트림은 카본 패턴 대신 우드를 적용해 비교적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실내 구성은 운전자에 최적화돼 있다. 작은 스티어링휠은 푸조만의 쫀득하고 날카로운 핸들링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그 위로 솟은 12.3인치의 널찍한 계기판은 헤드업디스플레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시선 분산을 대폭 줄여 준다. 계기판의 해상도나 선명도는 매우 만족스럽다. 다만 계기판의 숫자는 다소 작은 편이다. 기어 변속기의 위치 또한 다른 세단 대비 꽤 높아 운전하기에 편리하다.

다만 실내 곳곳에 세심한 마감 처리는 아쉽다. 특히 트림 간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진다. 시승차인 알뤼르 트림에는 플라스틱 소재가 비교적 많이 쓰였고, 모든 시트는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GT 라인부터 고급 나파 가죽 시트 및 전동식 시트 조절이 적용된다. 여기에 8포켓 마사지 기능까지 사용 가능하다. 508의 고급감을 느끼고 싶다면 2.0 GT 라인부터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운전대를 잡았다. 508 디자인이 전하는 감성이 주행에도 그대로 이어질까. 일단 130마력의 1.5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푸조 508은 부드러운 변속 질감은 물론 모든 영역에서 가볍고 경쾌하다. 수치상으로는 그리 눈에 띄는 출력은 아니지만 저속에서 초기 반응이 빠르고 실생활에서 주로 사용하는 엔진회전구간에서 경쾌한 주행 성능을 발휘한다. 고속 주행에서는 세단 치고 거침 없지만 ‘거침없다’는 느낌보다 ‘안정적이다’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일반 주행 보다는 스포츠 모드로 두고 달리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508의 드라이브 모드는 에코, 노멀, 스포츠 등 3가지가 있다. 기어 레버 위쪽에 위치한 드라이브 모드 버튼을 눌러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계기판 색상이 바뀌면서 가속 페달 및 운전대 반응이 약간씩 달라진다. 운전대는 단단해지고, 가속 페달을 눌러 밟을 때마다 묵직한 배기음이 바닥을 타고 웅웅 올라온다. 잠시 기어를 낮추고 엔진 회전수를 높이기도 한다. 다만 극적인 변화는 아니다.

안전을 위해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도 넣었다. 푸조 508은 모든 트림에 크루즈 컨트롤, 차선 이탈 방지, 오토 하이빔 어시스트, 액티브 블라인드 스팟 모니터링, 운전자 주의 경고 등 다양한 안전 사양이 들어간다. 단 알뤼르 트림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스톱 앤 고와 차선 중앙 유지 기능이 포함된 드라이브 어시스트 플러스 팩이 없다.

신형 508이 국내 출시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얼마 전엔 508의 국내 반응을 살피기 위해 푸조 CEO 장-필립 임파라토(Jean-Philippe Imparato)가 방한했다. 그는 ‘전세계적인 SUV 열풍 속에서 신형 508이 세단의 귀환을 이끌었다’고 자평할만큼 신형 508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쳤다. 이날 그가 강조한 푸조 508의 핵심 메시지는 ‘즐겨라(Enjoy)’였다.

실제로 508은 즐기기에 충분한 차였다. 2열석에 앉아보면 생각보다 좁은 머리 공간 등으로 당황할 수 있지만 일상에서 ‘운전자’가 주행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특히 실내・외 디자인 등 여러 감성적인 요소들은 이를 알뜰히 채워준다. 편안함이나 실용성보단 즐거움, 멋을 위한 세단이다.

한편 푸조 508은 1.5 디젤 엔진을 탑재한 알뤼르와 2.0 디젤 엔진을 탑재한 알뤼르, GT 라인, GT 등 총 네 가지 트림이 있다. 가격은 각각 3,990만 원, 4,398만 원, 4,791만 원, 5,129만 원이다. 이 밖에 푸조 508의 왜건 모델인 508 SW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이고, 향후 508 하이브리드 등도 국내 출시할 전망이다.

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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