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 높은 주행 성능, 아쉬운 재미. BMW S 1000 R

강명길 기자 2022-06-13 10:31:37
[오토캐스트=김준혁 모빌리티 칼럼니스트] BMW 모토라드의 S 1000 R은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 S 1000 RR의 네이키드 버전이다. 이 말은 곧 두 모터사이클이 프레임, 엔진, 섀시의 거의 모든 부분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 사실은 디자인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S 1000 RR의 카울을 일부 벗겨내고 R 1250 R, F 900 R 같은 BMW 모토라드의 네이키드 라인업에 쓰이는 헤드램프를 더해 완성한 디자인이 딱 지금의 S 1000 R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포츠 네이키드라는 장르에 맞게 핸들바를 높여 편안함을 추구했다. 동시에 전용 사이드 페어링을 더해 공격적인 이미지까지 완성했다. 이런 노력에 힘 입어 S 1000 R은 날렵하면서도 빈틈없이 꽉 찬 디자인을 자랑한다.

스포츠 네이키드의 특징이 더해진 덕분에 S 1000 R은 S 1000 RR보다 다루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 1000 R의 스펙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직렬 4기통 999cc 엔진은 1만1000rpm에서 165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뿜어내고, 9250rpm에서 11.6kg·m의 최대토크를 터트린다. 그러나 부담스럽지는 않다. S 1000 RR보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 발생 시점이 각각 2500rpm과 1250rpm 낮은 게 큰 이유다. 무엇보다 실용 영역대인 4000rpm 직후부터 10.0kg.m 넘는 토크가 나오기 때문에 굳이 엔진 회전수를 끝까지 올릴 필요가 없다.

숫자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S 1000 R의 전체적인 짜임새다. 엔진, 변속기, 체인, 뒷바퀴까지 구동력이 전달되는 모든 부분이 마치 한 덩어리 같다. S 1000 R을 측면에서 봤을 때의 빈틈없는 구성과 치밀한 디자인이 주행에서도 그대로 전해지는 기분이다. 스로틀 레버를 비틀어 엔진 회전수를 1만rpm 가까이 높인 뒤, 쫀쫀한 감각이 더해진 퀵시프트로 상향 변속을 해 속도를 올리는 모든 과정 또한 신속하고 매끄럽다. 마치 수백 개로 구성된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리는 느낌이다. 그만큼 속도를 높이는 모든 과정에 빈틈이 없다.

S 1000 R의 치밀함은 비단 구동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프레임, 서스펜션, 브레이크 등 다른 부분에서도 촘촘하게 맞물린 기계적 완성도를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엔진과 앞뒤 서스펜션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알루미늄 재질의 브릿지 프레임은 거친 노면에서도 높은 차체 강성을 유지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체의 흔들림이 없다. 버튼 하나로 감쇠력을 로드와 다이내믹, 두 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앞뒤 전자식 서스펜션의 탄탄함도 이런 느낌을 배가한다. 브렘보 로고가 사라져 아쉬웠던 브레이크 시스템은 기대 이상의 날카로운 제동력을 선사한다.

S 1000 R의 이런 특성은 민첩한 코너링 성능으로 이어진다. 휠베이스가 1445mm로 동급 경쟁 모델 가운데 짧은 편인데, 앞서 언급한 특징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물 샐 틈 없는 치밀한 설계 덕분에 무게 중심까지 차체 한가운데 응축되어 199kg의 공차중량 이상으로 가볍기까지 하다.

그래서 코너에서의 움직임이 날렵하다. 라이더가 원한다면 일반도로에서도 S 1000 R의 한계를 마음껏 끌어낼 수 있다. 6.5인치 디지털 계기판을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나타나는 좌우 뱅킥각 정보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가고 싶은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긴 뒤 몸의 무게 중심을 넘겨 스로틀 레버를 비틀었을 뿐인데, S 1000 R의 계기판에는 최대 36도의 뱅킹각이 찍힌다. 코너를 날카롭게 달린다는 의식을 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S 1000 R은 너무나 쉽고 아무렇지 않게 코너를 정복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S 1000 R로 빠르고 날카롭게 달리는 모든 과정에 무엇인가가 결여된 느낌이다. 바로 재미다. S 1000 R은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한 성능을 선사하지만 기묘하게도 재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레인/로드/다이내믹/다이내믹 프로, 네 가지로 구성된 주행 모드가 로드로 설정된 탓일까? 주행 모드를 한 단계 위로 높여 다이내믹으로 맞췄다. 동시에 댐핑 감쇠력도 로드에서 다이내믹으로 바꿨다.

그제서야 S 1000 R에 활기가 돈다. 스로틀 반응이 한층 날카로워지고 구동계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다만, 다이내믹으로 설정된 서스펜션은 일반도로에서 타기에는 지나치게 딱딱하다. 노면 상태가 일정하고 고른 트랙이라면 모를까 일반도로에서는 충격 흡수가 거의 되지 않아 부담스럽다.

S 1000 R이 다이내믹 모드에서 보여준 다른 모습에 힘입어 다이내믹 프로까지 도전해봤다. 이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배기음의 변화다. 배기 시스템의 밸브가 열리며 스로틀을 풀 때마다 방방거리며 팝콘 터지는 소리를 낸다. 마치 BMW의 고성능 자동차, M 같다.

다이내믹 프로 모드에서는 엔진 맵핑, 엔진 브레이크, 트랙션 컨트롤, 윌리 컨트롤, ABS의 반응 속도나 개입량을 개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S 1000 R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던 전자 장비의 반응 속도를 최대화하고 개입량을 최소화하면 즉시 등골이 오싹해지고 짜릿한 느낌이 든다. 그 때만큼은 슈퍼스포츠인 S 1000 RR을 타는 것 같다. 그 정도로 S 1000 R은 주행 모드에 따른 성격 변화가 분명하다.

그래도 어딘가 아쉽다. 전자 장비의 개입량을 최소화해도 S 1000 R의 설계가 완벽하고 치밀한 탓에 라이더의 의지가 아닌 모터사이클에 끌려 다니는 기분이다. 마치 자신이 어떻게 달려야 할 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경주마에 올라탄 것 같다. 말의 능력이 워낙 뛰어난 탓에 기수의 실력이 부족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S 1000 R이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도 S 1000 R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니 라이더는 딱히 할 일이 없다. 트랙에서 랩타임을 1000분의 1초까지 다투는 S 1000 RR 같은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이라면 이런 설정이 반가울 수 있다. 그러나 달리는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하는 스포츠 네이키드는 다르다. 잘 달리는 것과 재밌다는 것. 이 둘은 분명 다른 얘기다. 완벽한 S 1000 R과 하루를 함께 했음에도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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