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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캘리포니아#09] 캘리포니아서 만난 볼보차 디자이너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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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자동차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
[오토캐스트=이다정 기자]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11월의 미국 캘리포니아. 한국에서 챙겨온 얇은 재킷을 여며 입고 캘리포니아주 카마릴로에 위치한 볼보자동차의 위성 디자인 센터(satellite studio)를 찾았다. 볼보자동차의 한국인 디자이너 이정현 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오전 11시, 띄엄띄엄 세워진 익명의 건물을 지나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에 멈춰 섰다. 표지판 하나 없는 깔끔하고 반듯한 건물이다. 건물 주변에 서 있는 여러 대의 볼보 차가 없었다면 볼보 디자인센터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만하다. 잘못 찾았나 싶어 문 앞을 서성이던 중 그가 커다란 통유리 문을 열고 나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익스테리어・인테리어 디자이너, 디지털 모델러, 스튜디오 엔지니어를 포함해 스무명이 근무하고 있는 이곳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입구에 놓인 토르의 망치를 지나 1층 VR 라운지를 둘러봤다. 각국의 볼보 디자인센터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들이 가상 공간에 모여 리뷰하는 장소다. 이 외의 공간은 비공개여서 1층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그의 이야기를 물었다.

“졸업하니 서른, 돌아왔지만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다”
볼보자동차 이정현 디자이너


볼보 XC60 메인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이정현 씨는 볼보자동차에서 10년을 근무한 장기근속자다. 이젠 디자이너 앞에 ‘한국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민망할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10년 전 만해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 길을 걷게 됐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로 입을 뗀 그는 “창의력을 발휘해 스케치를 뽑아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뽑아내는 게 즐거움 중 하나”라며 자신의 일을 ‘즐거움’으로 표현했다. 그만큼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그가 볼보자동차 디자이너로 발을 디딘 것은 서른이 넘어서다. 처음부터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한 것은 아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일을 하기까지 오래 걸려 돌아왔다”.
지난 2017년 XC60 국내 출시 현장

그는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기계설계학을 전공했다. 공군에 입대해서는 기체 정비병으로 지냈다. 비행기도, 자동차도 좋아했지만 기계 공부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제대 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그림을 접목시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정이 자동차 디자인이다.

디자인 공부를 위해 유학을 결심하고 복학 후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수의 디자인 스쿨이 많지만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 좋아 스웨덴으로 떠났다. 외국인 대상으로 학비가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그는 스웨덴 우메오 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졸업했을 때 나이는 서른이다.

“한국 여백의 미, 스웨덴 디자인과 닮았다”


스웨덴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동안 그에게 그곳의 디자인은 어딘가 익숙했다. “부담스럽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왔다”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을 ‘30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 ‘문화나 취향 등 뼛속까지 한국인’이라고 설명하며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비움・여백의 미학이 스웨덴의 라곰(lagom, 스웨덴어로 ‘적당한’, ‘충분한’, ‘딱 알맞은’을 뜻하는 말)과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이것이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 볼보의 자동차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로는 한국의 미와 스웨덴 디자인과의 오묘한 접점을 꼽았다. 그는 또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프리미엄・럭셔리와는 다른 새로운 프리미엄이 바로 스칸디나비안 럭셔리라고 생각한다. 볼보자동차가 그 갭을 정확히 메웠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XC60, 더 이상 뭔가 할 수 없을 만큼 신경썼다”


한국인이어서 자연스럽게 익혀왔던 여백의 미, 스웨덴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며 배웠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그가 주도해 디자인한 XC60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에 따르면 XC60을 만들며 공들이지 않은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다.

XC60는 볼보자동차의 캐시카우(Cash Cow)다. 1세대가 나왔을 때부터 제일 잘 팔렸다. 그만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부담감도 느꼈을 터. 그는 “차가 새로 나오면 몇 십 년을 타야하고, 박물관에도 가야하는 등 계속 남을 것이기에 마스터피스를 디자인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대충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렇지만 작업 당시 잠도 안자고 밥도 안 먹고 임했다”고 말했다.

이어 “XC60을 만들어가면서 더 이상 뭔가 할 수 없을 만큼 신경을 많이 썼다. 당시는 쓸데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데 있는데 까지 욕심을 많이 부렸다. 차를 들어 올려야 보이는 언더실드 디자인까지도 심혈을 기울였다. 병적이라고 할 만큼 신경 쓰고 스스로를 많이 힘들게 했지만 지금은 후회가 없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XC60

그의 XC60 스케치가 최종 선정된 후 양산까지 이어가는 과정에 어려운 부분들도 많았다. 양산 모델을 만드는 데 단순히 스케치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 그는 “양산 프로세스에서는 엔지니어, 마케팅 등과 협업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까지가 진짜 디자인의 과정이다”라고 설명했다.

후속작에 대한 부담을 물으니 “다음 세대 XC60은 제가 안한다”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후속작은 다른 디자이너들이 지금 준비 중이다. 앞으로 나오는 XC60도 제가 열심히 노력한 것 이상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 현재 그는 볼보의 미래 디자인의 방향성을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막힐 땐 아무것도 안하는 게 방법”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힘든 순간이 오기 마련. 그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직업이 된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힘들어 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 때마다 그는 ‘이 일을 하고 싶어하던 열정이 어디갔지?’,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그럴 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이를 벗어나는 그의 방법이다. “잠을 자든 퇴근을 하든 일을 안 한다. 아무것도 안한다. 차 말고 전혀 다른 것들을 접하기도 한다. 일을 붙잡고 있는다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충분히 쉬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에너지도 생긴다. 이게 나만의 노하우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도 남겼다. 그는 “가끔씩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만나보면 벌써부터 열정이 없는데 어떻게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며 “꼭 하고 말겠다는 열정이 있어도 10년, 20년이 지나면 힘들어질 때가 오는데 처음부터 그런 열정이 부족한 친구들을 보면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에 기름을 부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dajeong@autoc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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