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가전 전시회에서 꿈 펼친 자동차 업계...도대체 무슨꿈?

완성차, 부품사 같은 미래 다른 꿈
전자회사 대비 '안전', '신뢰' 강조한 자동차 부품사
이다일 기자 2020-01-13 16:03:42

[라스베이거스=이다일 기자]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 CES가 지난 4일 개막했다. 불과 나흘간의 전시로 끝나는 행사에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는 물론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포드 등 주요 자동차 업계가 부스를 차렸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티어 1’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부품사 역시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홍보에 나섰다. 이들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체험하세요...확실한 방법 보여준 BMW

가전 전시회 CES에서도 자동차는 시승이 우선이다. 첨단 기술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가장 확실한 것은 체험이다. BMW는 CES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별도의 건물을 만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시승을 떠나도록 구성했다.


BMW의 전기차 i3에 자율주행 기술을 넣었는데 이를 체험하는 방법도 직접 탑승해보는 것. 전시장 옆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관객들은 잠깐의 설명을 듣고 차를 탄다. 운전자가 없는 i3는 스스로 장애물을 피하면서 주행한다. 이곳에는 레이다, 라이다, 카메라를 전시하면서 기술을 보여준다. 각 부품에는 컨티넨탈, 앱티브 등의 전장회사 이름이 그대로 찍혀있다.


또, BMW는 i3를 ‘어반 스위트’라는 콘셉트로 개조해 시승하도록 했다. 2+2 형태의 좌석을 1+1 형태로 개조했고 나머지 공간은 뒷좌석 승객을 위한 자리로 만들었다. 조수석 자리는 발받침이 됐고 운전석 뒷자리는 가방을 놓거나 물건을 놓아두는 테이블로 바뀌었다. 미래의 자율주행 차에서 편한 뒷자리는 이럴 것이란 설명과도 같았다.

# 상상의 나라로 떠나버렸다...벤츠 AVTR

메르세데스-벤츠의 세계는 달랐다. 라스베이거스 MGM 호텔의 극장을 통째로 빌려 보여준 퍼포먼스에는 영화 ‘아바타’의 미래가 펼쳐졌다. 다임러 그룹 올라 칼레니우스 회장은 제임스 카메룬 감독과 함께 콘셉트카를 만들고 무대를 꾸몄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영화 ‘아바타’의 2편 제작을 진행하는 카메룬 감독과 만난 소감을 전하며 “자동차 생산이 늘어날수록 자원의 소비도 늘어난다. 이제는 자동차 생산이 늘어나도 자원 소비가 함께 늘지 않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향후 2030년까지 차량을 생산하며 발생하는 폐기물을 40%까지 줄이고 재활용 비율을 95% 이상으로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벤츠는 이를 위한 콘셉트를 영화 ‘아바타’ 팀과 함께 만들었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은 물론 영화의 제작 담당자들이 벤츠의 엔지니어, 디자이너와 팀을 이뤄 콘셉트카 개발을 담당했고 그 결과로 ‘비전 AVTR’을 선보였다.


비전 AVTR은 마치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새로운 생물처럼 반응한다. 페달과 운전대는 없고 오른손을 얹어 주행을 조절한다. 트렁크 부분은 마치 동물의 갈퀴 또는 물고기의 비늘이나 지느러미처럼 움직이고 타이어 역시 빛을 내며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벤츠는 이번 CES를 통해 자원을 절약하고 재활용하고 재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미래의 프리미엄 자동차에서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 미래 도시 발표한 토요타, 수소+자율주행+로보틱스 조합

CES에서 토요타가 발표한 것은 제품이 아닌 ‘사회’다. 미래의 도시를 그려냈다. 도요타 아키호 회장이 직접 소개한 도시는 일본 후지산 인근의 토요타자동차 공장을 활용해 2021년 착공한다. 2000여 명이 생활하는 도시의 설계는 덴마크의 비야케 잉겔스가 맡았으며 중앙의 커뮤니티 공간과 지상의 거주 공간까지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기술을 일상적으로 접하도록 설계했다. 지하에는 토요타가 추진하는 수소 연료 기술을 활용한다. 토요타는 이 도시를 천을 만드는 기술, 방직에서 따온 ‘우븐 시티’라고 이름을 붙였다. 토요타 최초의 설립 역시 방직소에서 온 것도 연관됐다.


토요타는 화려한 애니메이션으로 도시를 보여줬다. 하늘에는 UAM-비행체로 보이는 것이 날아다니고 도시 안에서는 이-팔레트 (e-palette)가 주요 운송수단이다.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으로 도시를 이동한다. 집안에서는 휴먼 서포트 로봇이 물을 떠다주는 것과 같은 가사 도우미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이번 CES에서 처음 선보인 자동차 LQ는 인공지능 YUI를 탑재해 사람과 교감한다. 헤드라이트 역시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 도시의 기반에는 수소연료가 있다. 일본은 이미 수소경제 실현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고 현실화에 돌입했다. 호주에서 태양광을 이용한 수소 생산에 도전하고 이를 일본으로 들여오기 위한 운반선 역시 제작하고 있다. 수소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우븐 시티와 같은 공간에서 소비하게 된다.


토요타의 이번 발표는 기존 CES에서 로봇, 수소차, 자율주행 기술 등 단편적인 기술을 보여주던 것과 규모가 다르다. 지금까지의 기술을 통합해 미래 사회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실증 실험에 나서는 것이다.

# 운송수단의 미래 보여준 현대차

현대자동차는 운송수단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심을 돌아다니고 허브에 와서 연결된다. 연결 즉시 사람이 내려서 활동을 시작한다. 허브는 영화관, 병원, 카페를 포함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옥상에는 개인용 비행체가 이착륙한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려면 비행체를 이용한다. 도착지에서 다시 자율주행 자동차를 탑승하면 된다.

현대자동차 지영조 사장이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의 이 같은 콘셉트는 미래 사회의 화두로 알려진 공유, 자율주행, 비행체의 삼박자를 한 곳에 모았다. 자율주행으로 운전에서 벗어난 사람은 잠을 자거나 회의를 하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차 안에서 하며 시간을 보낸다. 목적지에 도착 즉시 회의를 하도록 이동하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도착지 허브는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한 구조다. 심지어 자율주행차는 앰뷸런스로 허브는 병원으로 구성이 가능하다.


현대차의 콘셉트는 토요타의 그림과는 다르다. 큰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아주 가까운 미래에 실현할 수 있는 구조다. 토요타는 독자적으로 모든 개념을 완성하는 그림이라면 현대는 우버를 포함한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완성하는 그림이다.

# 치열한 영업, 부품사의 CES

완성차 회사들이 미래를 보여주고 꿈을 실현한다면 부품사들은 매우 현실적인 영업에 나선다. 보쉬와 컨티넨탈 같은 전통의 자동차 부품사들은 가전, 전자 회사들의 모임인 CES에서 반격의 카드를 건넸다. 보쉬는 AI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전자제품 회사와 결이 다름을 강조했다. ‘안전’과 ‘신뢰’에 초점을 맞췄다. 프레스컨퍼런스 역시 “AI라고 하면 터미네이터와 같은 무서운 이야기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자동차에서 활용하는 만큼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뜻이다.


보쉬는 이미 3만 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있고 1000명의 직원들이 AI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사업부서가 있다고 발표했다. 또, 버추얼 바이저와 같은 제품을 개발하면서 소프트웨어 사업과 하드웨어 사업을 고르게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금까지 엔디비아, 퀄컴과 같은 전통의 IT회사가 자동차 업계로 확장하던 영역에서 ‘신뢰’를 무기로 역공에 나선 모양새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하만 역시 CES를 이용해 실질적인 영업 활동에 나섰다. 하만은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인근 하드록 호텔 안에 별도의 전시장을 개설하고 CES에 방문하는 업계 관계자를 초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하만의 자동차 전장기술을 전시하고 설명한다. 하만은 커넥티드카, 오디오 등의 자사 기술을 통합한 ‘하만 ExP’ 솔루션을 선보이며 전 세계 자동차 회사를 대상으로 영업에 나섰다.

# 자동차 업계 공략하는 전자회사...선은 넘지 않았다

이미 현재의 자동차 가운데 절반은 전자제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CES에 등장한 미래의 자동차들은 보다 많은 부분이 전자제품이다. 게다가 전기차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내연기관 대비 많은 부분이 모듈로 대체됐고 자동차 생산 문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삼성전자, LG전자, 소니를 포함한 전통의 전자회사들은 자동차 전장부품 소개에 힘을 실었다. 삼성은 하만을 인수하며 보여줬던 디지털 콕핏을 포함한 전장 부품을 메인에 올렸고 갤럭시에서 보여준 5G 통신 기술을 넣어 통신용 컨트롤 유닛을 발표했다. LG 전자는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를 바탕으로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조합해 보여줬다. 부스에는 콘셉트 형식의 자동차를 올려놓으며 자동차 부품사의 입지를 보여줬다.

이들 전자회사의 주요 고객은 완성차 업체다. 따라서 자동차 개발을 선언하는 것은 고객을 적으로 돌리는 악수가 된다. 그래서 이들 회사는 적절한 선을 유지하며 실익을 얻는다. 이번 소니가 차를 내놓기 전까지는 그랬다.


소니는 이번 CES에서 전기 콘셉트카를 내놨다. 360도를 센서로 둘러싼 과감한 구성에 주행거리까지 표시한 구체적인 자동차를 선보였다. 실제 움직이는 콘셉트카를 만들어서 프레스컨퍼런스에 타고 나타나기도 했다. 소니가 전기차를 만드는 데에 남은 과정은 양산뿐이다. 소니는 주로 이미지 프로세서와 카메라를 바탕으로 자동차 사업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LG나 삼성과는 품목이 다르다. 입장이 다른 만큼 선을 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단 소니는 자동차 양산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쇼에서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또, 자율주행이 현실화되면 실내에서 소니의 게임, 영화, 음악까지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게 되는 상황이 가능해진다. 콘텐츠로 접근해도 소니의 자동차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전반적으로 자동차 업계가 CES에 뛰어든 후 전자업계와 잽을 치고  받는 분위기다. 전장 부품에서 앞서가던 전자 회사들의 약진이 자동차 부품사를 중심으로 역전될 조짐을 보인다. 센서와 배터리, 모터로 첨단 자동차를 보여줬다면 자동차 회사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신뢰’와 ‘안전’을 더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아마도 다음 CES에서는 펀치가 오갈지도 모른다. 선을 넘으려는 전자회사와 경쟁 우위를 가지려는 자동차 회사의 경쟁에서 어떤 구도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auto@autocast.co.kr

    경향신문과 세계일보에서 여행, 자동차, 문화를 취재했다. 한민족의 뿌리를 찾는 '코리안루트를 찾아서'(경향신문),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소개한 '아름다운 한국'(경향신문+네이버) 등을 연재했고 수입차 업계의 명암을 밝힌 기사로 세계일보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2017년에는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캐스트를 창간하고 영상을 위주로 한 뉴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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