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그릇 키운 쌍용차의 렉스턴 스포츠 칸

이다정 기자 2019-01-11 09:55:03
쌍용자동차의 ‘-스포츠’ 시리즈를 볼 때마다 못내 아쉬웠다. SUV와 픽업트럭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좋게 보면 두 가지 성격을 아우르지만, 냉정하게 보면 어중간하다. 작년 초 G4 렉스턴에 숏데크를 붙인 렉스턴 스포츠를 출시하면서 ‘트럭’이라는 말 대신 ‘오픈형 SUV’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렇다. 이번엔 진짜 픽업트럭을 내놨다. 렉스턴 스포츠의 차체와 짐칸을 키운 ‘렉스턴 스포츠 칸’이다.

그릇의 크기가 커지면서 버틸 수 있는 무게도 늘었다. 더 많이, 무겁게 담을 수 있다. 기존 렉스턴 스포츠보다 차체의 길이가 310mm 늘었고, 데크가 300mm 늘었다. 최대 700kg까지 짐을 실을 수 있다. 렉스턴 스포츠는 400kg가 최대였다. 단 5링크 서스펜션이 달린 모델을 선택하면 적재함의 크기가 같더라도 적재 중량은 500kg로 줄어든다. 렉스턴 스포츠 칸은 선호와 용도에 따라 후륜 서스펜션을 달리 선택할 수 있다. 파워리프 서스펜션과 5링크 서스펜션 두 가지로, 이날은 두 모델 모두 시승했다.

5m가 넘는 거대한 칸의 몸집은 가히 압도적이다. 게다가 짐칸에는 제리캔 3통, 스페어 타이어 4개와 함께 묵직한 도끼가 얹혔다. 이것만으로 이 차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투박하고 거친 화물차이자 오프로드도 문제 없는 차라는 정도. 사실 시승차에 화물을 잔뜩 실은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승차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시승차에 장착된 파워리프 서스펜션은 주로 화물차에 쓰이는 판스프링 방식의 서스펜션이다. 이를 적용하면 적재 한계가 높아지는 대신 주행 시 탑승 공간과 적재 공간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기 쉽다. 이 때 뒤에 무게를 실어주면 승차감이 비교적 안정된다.

서울 양재를 출발해 소남이섬으로 향했다. 전반적인 주행감이나 승차감은 렉스턴 스포츠와 비슷하다. 운전대 감각이나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의 반응은 가볍고 부드럽다. 차체가 커도 부담없이 운전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진동과 소음을 훌륭히 잡았다. 공회전 상황은 물론 주행을 시작해도 마찬가지다. 고속으로 갈수록 귓가에 풍절음이 울리지만 노면 소음이나 디젤 엔진 특유의 진동을 최대한 억누른 것이 인상적이다.

파워트레인에서는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쌍용차다. 이번에도 2.2리터 디젤 엔진과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커진 차체에 늘어난 적재 능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토크 수치만 조금 늘렸다. 최고출력 181ps(4,000rpm), 최대토크 42.8kg·m(1,400~2,800rpm)다. 가속력은 박진감 넘치진 않지만 꾸준하고 부드럽다. 과속 방지턱이나 요철을 넘을 때는 다소 튀는 경향이 있는데, 오프로드에서의 유연한 움직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만 한 수준이다.

칸의 외관은 커진 차체 크기와 그릴 디자인, 후면부에 붙은 KHAN 레터링 엠블럼으로 렉스턴 스포츠와 구분할 수 있다. 실내는 큰 차이가 없다. 칸 전용으로 블랙 헤드라이닝을 넣었지만, 사실상 블랙보단 다크 그레이에 가깝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운전자를 다소 불안하게 만들던 기어 레버 디자인은 안정감있게 바뀌었다. 2019년 형 G4 렉스턴의 것과 같다.

소남이섬에 도착해 쌍용차가 마련한 오프로드 코스를 체험했다. 주행 코스는 사면 경사로, 자갈길, 통나무 범피, 모굴 등으로 구성됐다. 먼저 오르막 경사로 꼭대기에 올라 내리막 경사로 저속 주행 장치를 켰다. 내리막에서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모두 떼자 4km/h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며 안전하게 내려갔다. 단 어느 쪽 페달이든 살짝이라도 발이 닿으면 이 기능은 자동으로 해제되기 때문에 이용할 때 주의해야 한다.

이어 자갈과 통나무 등 험로 탈출 코스를 지났다. 쌍용차의 4륜 구동은 운전자의 판단에 따른다. 주행 환경을 보고 운전자가 직접 2WD나 4WD High 또는 4WD Low를 선택해야 한다. 모드를 바꾸기 위해서는 변속기를 N에 두고 그 아래에 있는 레버를 돌려야 한다.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면 계기판에 변경된 구동 모드의 표시가 뜨면서 준비를 마친다.

험로 탈출 능력은 기대 이상이다. 높은 모래 언덕이 울퉁불퉁하게 배치된 모굴 코스에서는 바퀴 한 쪽이 뜨거나 빠진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빠져 나왔다. 바퀴가 헛도는 상황에서 가속 페달을 부드럽게 밟으니 바닥에서 뭔가 걸린 듯한 ‘턱’ 소리가 나면서 탈출한다. 접지력이 살아있는 바퀴 쪽에 힘을 몰아 주는 차동기어잠금장치 개입 덕분이다. 쌍용차에 따르면 일반차동기어장치가 적용된 모델 대비 등판능력은 5.6배, 견인능력은 4배 가량 우수하다. 다만 파워리프 서스펜션을 장착한 모델은 오프로드 코스가 다소 험난해지는 곳에 다다르면 구조 특성상 노면과 차량 바닥이 닿기도 했다.

쌍용차가 SUV 전문 브랜드로 방향을 확실히 잡아 그릇을 키워가고 있다. 특히 이번 칸 출시를 통해 더욱 풍성해졌다. 이용자들의 선호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G4 렉스턴을 비롯해 숏 데크를 장착한 렉스턴 스포츠, 여기에 롱보디 버전인 칸은 세부적인 선택지도 늘렸다. 적재 한계를 크게 높인 파워 리프 서스펜션 모델(파이오니어)을 마련해 다양하고 본격적인 레저활동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다이내믹 5링크 서스펜션(프로페셔널)은 보다 안정적인 승차감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채운다.

렉스턴 스포츠 칸에 대한 시장 반응은 고무적이다. 이날 시승 행사에 깜짝 등장한 최종식 쌍용차 사장은 “지난 3일 렉스턴 스포츠 칸의 판매를 시작하고 나서 하루 평균 250대 정도 계약이 되고 있다”며 “이 추세라면 월 판매 5000대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계획보다 반응이 더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만큼 올해는 칸을 포함한 렉스턴 스포츠를 지난해보다 1만대 늘어난 5만 2000대 정도 판매할 계획”이라며 “올해 16만 3000대를 판매 목표로 잡고 흑자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렉스턴 스포츠 칸의 가격은 파워리프 서스펜션을 장착한 파이오니어X(Pioneer X) 2,838만 원 파이오니어S(Pioneer S) 3,071만 원이다. 5링크 서스펜션을 장착한 모델인 프로페셔널X(Professional X) 2,986만 원, 프로페셔널S(Professional S) 3,367만 원이다.

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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