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기행 #8] 느려서 행복한 신안 증도 이학식당

2024-05-17 10:15:38
곳곳에 염전이 보이고 갯벌 냄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 서울을 멀리 떠나 외로움을 달래기에 제격이다

국밥이 당길 때가 있다. 전날 과음을 했거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쌀쌀한 날이거나, 서양음식을 연속으로 먹었을 때다. 하지만 국밥이 가장 끌리는 때는 외로울 때다. 문득 보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 날,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마음이 무겁게 차분해지는 날, 누구도 말 걸어오지 않고 혼자인 것 같은 날, 국밥이 생각난다. 

시인 박난민은 시 ‘국밥’에서 “무거운 가방 내려놓고, 얼큰한 국밥 한 그릇 마주하면, 왁자지껄한 장터, 잠시 잊고, 풍성한 마음이 된다”고 썼다. 국밥은 외로움을 달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을 더 가중시켜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어떤 빈 마음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음식이다. 국밥 한 그릇이 삶의 의미를 만들어 주고 용기를 내게 해 준다면 함께 어울려 먹기에 이만한 음식이 있을까? 쉰의 나이가 되면서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 그럴 때면 어느 섬에 있고 싶다. 섬에 가면 파도 곳곳에 박힌 작은 섬들을 구경하고, 오후의 햇살에 비단처럼 살랑이는 윤슬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바람소리도 조용해지는 섬을 서성이며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X5를 타고 2010년에 개통한 증도대교를 따라 증도에 들어서면 시간이 느려지는 자연을 만나게 된다

증도로 출발한 날이 그랬다. 좇기 듯이 살다가 문득 왜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내야 할 일과 사람 관계, 그리고 성공이라는 조바심에 한 발 떼기 힘든 무게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통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잠을 설치는 것이 아까워 이불을 박차고 차를 몰았다. 그 출발만으로 이미 어젯밤 머리를 맴돌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사라졌다. 섬에서 기다릴 시원한 바람을 실컷 쐴 생각에 머리가 맑아졌다. 

증도는 서해안이 남해안과 만나는 전남 무안에서부터 신안, 목포, 해남, 진도에 이르는 한반도의 서쪽 아래에 위치한 수많은 섬 중에 하나다. 2010년에 증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이제는 자동차로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증도로 가는 길은 멀어도 너무 멀다. 아침 일찍 출발해도 점심때를 맞추기가 빠듯하다. 네 시간 남짓 머리를 비우며 달리다 보면 광주 무안 고속도로 끄트머리에서 국도로 접어든다. 그때부터는 서울에서 멀리 온 보람이 가득해진다. 불그스름한 밭이 탐스럽게 펼쳐지고 들판에는 여기저기 마늘과 양파가 푸릇푸릇하다. 허여멀건 바다가 얕은 산을 끼고돌아 나가고 곳곳에 염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안군이다. 차를 타고 달리고 있지만 마음이 고요해지고 눈앞의 풍경을 보며 호강에 젖는다. 신안은 서천과 고창의 갯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록되어 생물보전 지역으로 유명하다. 느려서 행복한 섬이라고 자청하는 곳이다. 
증도의 끄트머리에 크게 자리잡은 이학식당. 여름에 직접 잡은 짱뚱어를 냉동시켜 일 년 내내 손님을 맞는다

증도에 간 건 오로지 짱뚱어탕 때문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시인 이돈배는 시 ‘증도 가는 길’에서 “갯길로 드나드는 수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바닷물이 들면 여기 갯벌에 휴식이 든다, 물이 들어오지 않아도 짱뚱어는 즐겁게 뛴다”고 했다. 갯벌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짱뚱어는 청정 갯벌에서만 산다. 망둑어와 비슷하지만 짱뚱어는 푸른 반점이 있고, 망둑어가 동물성 먹이를 먹는 육식성이지만 짱뚱어는 해조류와 작은 갑각류를 먹으면서 갯벌의 생태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짱뚱어는 7~8월 여름에 낚시로만 잡는다. 겨울잠을 자는 짱뚱어가 여름부터 자기 간에 영양소를 모아두면 훌치기 낚시 달인들이 순식간에 잡아간다. 이때 잡은 짱뚱어를 바로 냉동시켜 일 년 내내 짱뚱어탕을 끓여낸다. 짱뚱어의 간에는 영양이 풍부해 어민들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짱뚱어탕을 즐겼다. 
정갈한 섬 반찬과 함께 양은쟁반에 구수하게 차려진 짱뚱어탕

증도 들어가는 길에는 짱뚱어탕을 솜씨 있게 내주는 식당들이 여럿이다. 그중에서도 증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학식당이 36년간 증도의 시간을 지키며 식객들에게 예전의 짱뚱어탕 맛을 제공하고 있다고 소문 나 있다. 바다냄새가 나는 정갈한 반찬과 짱뚱어탕이 양은 쟁반에 다소곳하게 차려져 나온다. 짱뚱어탕은 한참을 뚝배기 속을 쳐다보게 만든다. 얼핏 보면 추어탕과 비슷한 장터국밥 느낌이다. 배추 시래기가 가득 들어 있고, 납작하게 썰어 넣은 무가 물컹하게 씹힌다. 깻잎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묵은 재료들과 반대로 상큼한 맛을 낸다. 주인공 짱뚱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냉동 짱뚱어를 갈아 넣고 오래도록 끓이고 끓여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 짱뚱어는 구수하면서도 걸쭉한 국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갯벌에서 즐겁게 뛰어놀던 물고기는 제 한 몸을 자연의 맛으로 돌려주고 사라진 것이다. 
깍뚜기를 올리고 짱뚱어탕의 맛을 보면 여름날 유쾌하게 갯벌에서 뛰어 놀던 짱뚱어마냥 즐거워진다

증도의 갯벌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짱뚱어는 갯벌이 생겼을 때부터 갯벌과 하나 되어 그곳을 지켰을 것이다. 그래서 짱뚱어탕은 무한한 세월의 갯벌을 통째로 갈아 넣은 맛이다. 이학식당의 짱뚱어탕은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짱뚱어를 자꾸 상상하게 만든다. 짱뚱어탕 한 그릇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정 갯벌에서 즐겁게 뛰어놀던 짱뚱어처럼 일상을 유쾌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증도의 잔잔한 앞바다를 보며 짱뚱어를 기다린다. 청정한 갯벌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다시 서울로 갈 길이 막막하지만 증도 앞바다에 서서 한참 동안 섬을 구경했다. 마침 밀물이어서 갯벌을 볼 수는 없었다. 배는 불러도 머리는 가벼워지는 시간. 곧 갯벌이 드러나면 짱뚱어는 머리를 들고 먹이를 찾아 마음껏 뛰어오를 것이다. 갯벌의 생태계를 지켜가는 짱뚱어가 인간과도 공생하며 거기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언제 오더라도 짱뚱어탕을 먹을 수 있게 청정 갯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사진 = 양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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